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감각적인 부분을 아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은 그것을 알 수 있는가.

NORMAL SENSE|2020. 3. 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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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쓸 때 어떤 것에 대해 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써놓은 글과 그림을 보면서 그들이 행해놓은 장치를 보며 즐거워한다. 

귀엽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구스범스가 일어나기도 한다. 

느낄 수 있다는건 그 감각이 아직 새 살과도 같아서 두꺼워지기 전과 같은 아주 연약한 부위라는 뜻이며 그런 부위를 갖고 있는 건 아직 어느 방면에서는 아이와 같다는 것이다. 

 

나는 귀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열려있다. 특히나 음악이나 자연음, 노이즈 같은 일상적인 소음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별해 낸다. 

인간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들었을 때 인간의 기능 중 하나로 그 언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마치 소음처럼. 

하지만 인간은 모국어를 들을 때 그걸 절때로 귀를 막지 않는 이상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귀는 저절로 열려있고 모국어는 알아서 귀로 들어와 뇌를 터치하고 가는 것이다. 

코난 오브라이언의 쇼를 보고 있으면 영어를 모르는 이들은 그가 하는 말을 소음 취급할 수 있지만 가족오락관에서 말하는 하나의 단어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기 싫어도 듣고 이미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철저히 분리시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모국어가 없는이, 귀머거리 deaf가 아닌 이상 우리는 소리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어떤 사운드에 관해서 그 부분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풀어 인공지능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 난 늘 독특한 결과를 갖고 오는 친구들이 좋더라고.

진부해져 버린 음악들은 양산되어가고 자신이 만드는 것에 대한 어떠한 고뇌를 갖지 않은 채, 그런 결과물을 듣는 이는 얼마나 안타까운 시간 낭비를 하게 되는 걸까. 

좋은 소리란 그 소리를 잘 뭉쳐서 귀에 박아주는 것이고 그 뭉쳐진 진동은 어택으로써 몸에 와닿을 수도 있고 잘게 씹어서 먹어야 남는 진동으로 변환될 수 있다. 

무엇이 그러한 사운드인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앞뒤의 관계를 잘 이용한다면 그러한 울림은 역설적이지 않고 가슴을 정통으로 뚫어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다. 음악은 시대에 걸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파되어져 왔다. 호모 사피엔스가 강세이던 초창기에는 막대기를 다른 막대기로 때리면서 소리를 내왔고 그걸 리듬 삼아 쳐오던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의 놀이이자 음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줄로써 탄현 되어 울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되고 이는 각 나라별로 특징이 있지만 공통적인 음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곤 예술이란 것에 더 집착하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을 때는 그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그것은 오히려 소리에만 집중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수학적이고 때로는 그럴싸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피아노는 오랜기간 울려 퍼졌으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문자를 이용한 결과물을 악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트렸고 한 순간 한 장소에서만 울리던 연주가 세계 여러 곳에서 울려 퍼지게 되었다. 터키행진곡은 전 세계적으로 몇 번이나 연주되었을까? 그리고 그 연주가 끊긴 적이 있을까? 어느 순간에도 누군가가 연주하고 있지 않을까? 데이터로 확인해보고 싶다.

재즈와 샹송 그리고 민요 같은 각나라의 대중음악이 전성기에 다다를 때에는 풍요로운 악기의 세상이 되었고 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악기를 단순히 연주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음악을 들려주며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런 기억을 남겨주는 이는 위대한 예술가로 남게 되었다. 

1900년대 말 20세기에는 악기의 홍수이자 가장 많은 악기의 연주가 자행되었던 시대이다. 그 뒤로는 연주하는 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대신 컴퓨터라고 하는 매체로 많은 것들이 이전되었다. 

벽화에 쓰이던 음계는 종이에 몇 십억하는 베토벤의 악보로 존재하게 되고 그 악보를 모니터로 보며 마스터 키보드로 연주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젠 핸드폰이라고 하는 포터블 디바이스에서 내가 원하는 음악을 아무렇게나 연주해주고 들어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더 나아가 단순한 오더를 시작으로 음악을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뇌가 보내는 뇌파가 좀 더명확하게 디노이즈의 결과를 보여준다면 이 또한 기대해볼 만한 아웃풋이고 그 역시 데이터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다음 생각, 이미지화하는 행위를 통한 인풋 값의 처리와 데이터화. 그렇다면. 

 

세상은 놀랍게도 저절로 디벨롭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줄 알고 있다.

회색으로 구름이 가득낀 하늘처럼 필터로 걸러지지 않는 마스크를 쓰길 원하는가 아니면 

그런 회색의 하늘에서 1초 정도 웃음 지으며 그렇게 살다 가길 원하는가, 이토록 절망적인 세상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고.

따듯한 양수에서 따듯한 손길로 나를 쓰다듬어 주던 때를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그렇게 기억하려고 애쓰며 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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